융합과 신뢰의 중요성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융합하는 세상은 열리지 않고 모두가 분열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므로, 가정과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에 분열이 일어나게 됩니다. 함께 있어도 구성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금이 가고, 각자 겉도는 개인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나 큰 조직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성원의 수가 수십만 명에 이를지라도, 서로의 힘을 하나로 모아 융합을 이루지 못하고 저마다의 빛을 내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저마다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이 힘을 어떻게 하나로 융합해 나갈 것인지 깊이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빛나는 별과 같아서, 함께 모여 조화롭게 융합을 이룰 때 비로소 엄청난 질량을 갖추게 되고, 나아가 자연의 이치를 다루고 사회를 이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인류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큰 질량을 갖춘 홍익인간들이 모두 성장해 있습니다. 앞으로 이분들이 이 사회를 어떻게 운용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며,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이들이 진정한 지식인입니다. 이 사회를 바르게 운용하기만 한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어려움은 전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이 길을 맞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결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바쁜 세상 속에서 몸이 마음보다 앞서기 쉽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급히 가까워지려 손부터 잡으려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남녀가 일곱 살만 되어도 한자리에 함께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처럼 육신으로 서둘러 가까워지려 하는 것은 단지 친밀해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정작 마음의 문은 닫혀 있어 진정한 융합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더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진정한 융합은 단순히 살을 맞대고 입을 맞춘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신뢰는 상대를 향한 존중에서 비롯됩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각자가 뚜렷한 삶의 기준 없이 되는대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굳건한 이념이 있는 사람은 삶을 함부로 살지 않지만, 이념이 없는 사람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됩니다. 뚜렷한 이념을 지닌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정신적인 거리감을 느끼기에, 단순히 육체적인 가까움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갖추어 완성을 이루고 나면, 그 이념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신이 늘 깨어 살아 있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와도 쓰러지지 않는 굳건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분들이 바로 홍익인간입니다. 대자연의 그 어떠한 힘도 이런 분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홍익인간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이르면 마땅히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이념이 반듯하게 서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지, 애초에 바로 세울 이념조차 없는 사람은 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꿈을 키우며 성장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이념을 찾아 그 뜻에 맞는 직장이나 사회에 들어가 현장 학습을 통해 공부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사회라는 현장에서 공부를 마치게 되는 40대가 되면, 자신이 얼마나 공부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인생의 시험지를 받게 됩니다. 이때 그 어떠한 논리 앞에서도 자신의 이념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이렇듯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하여 사십을 불혹(不惑)이라 일컫는 것입니다. 
 
40대에 이처럼 단단한 자신이 만들어지고 나면, 50대에는 지천명이라 하여 자신의 이념에 맞는 하늘의 기운을 받아 그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 사회와 인류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이 땅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바로 이러한 홍익인간으로 키워지고자 했던 첫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홍익인간 1세대로서 그 사명을 이루어 내지 못하고, 지금은 자신이 왜 사는지 그 이유와 방향마저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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