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지 말고 살아가기
숫자에 연연하거나 의연하지 마십시오. 이제는 어떤 수치나 현상에 의미를 두고 파헤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우리는 생활을 기쁘고 즐겁게 누리며, 홀연히 떠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마십시오.
세상 모든 일은 오늘도 변하고 내일도 변합니다. 그런데 그 일에 마음이 매이면, 내일이 변해도 나 자신은 그 변화에 함께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멋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종교나 사상에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이념을 찾아야 합니다. 그 이념이 정립되면 어디에도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신에게도 매이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자연입니다. 신도 자연이며, 우리 자신도 자연입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삼세판 따지며 과거·현재·미래를 얽매이는 것들은 우리가 알아가기 위해 공부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앞으로는 스승께서 공부할 내용을 이끌어 주실 것이니, 우리는 그것을 알아가며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삶에 활용하여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그저 아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살피고, 방편으로 잘 활용하여 삶을 빛나게 하는 데 필요합니다. 부처에게도 매이지 마십시오. 아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잘 가르치면 스스로 알아지게 됩니다.
무엇인가에 매이면 그다음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는 만큼 행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좋은 멘토를 만나게 되면 오늘 아는 것이 내일 아는 것에 더해져, 점점 더 질량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종교 비교학, 사상 비교학, 그리고 자기 이론의 비교학 등을 연구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과거에는 신에게 매달려 살았다면, 앞으로는 새로운 법이 나오고 있으니 이것들과도 비교해보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퇴보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기독교 문화를 접했던 것처럼, 앞으로 새로운 문화가 나오면 그것도 접하고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과거에 붙들려 멈춰 있는가, 아니면 지금 우리가 성장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삶을 조율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법을 가지고 오신 스승께서는 신에게도 매달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이 할 일과 신이 할 일이 다르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세상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매달리는 것은 하지 마십시오. 매달리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개발하지 못하고 기운이 자라지 않아 발전이 없습니다. 결국 신에게 의존하며 살아가게 되고,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종노릇하다가 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온 본래의 이유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영혼을 맑히고 정화하여 맑은 영혼으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인간으로 와서 다양한 인연을 만나고 상황을 겪게 되는 이유는, 이 안에서 공부가 이루어지고 상대의 중요성을 깨달아 서로에게 득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혼이 맑아집니다.
영혼이 맑아지면 죄업이 사라지고, 육신을 벗고 갈 때 천지기운으로 만들어진 내 존재가 중심이 되어 자연스럽게 천상으로 오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태양과 같은 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맑히고, 갖추고, 힘을 길러 그 안에서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고, 비교하십시오. 과거와 현재를,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여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필요 없어지는 것은 고마웠던 것으로 돌리면 됩니다.
종교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셨듯, 우리가 자라면 그분이 직접 가르치지는 않아도 감사한 존재로 남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잘 자라서 사회에서 빛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그분들께 의리를 갚는 도리입니다.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더 넓은 지식과 역량을 갖췄을 때, 부모가 자신들의 방식대로 자녀를 따르게 하면 오히려 자녀의 앞길을 막는 것이 됩니다. 자녀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들이며,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줄 일은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빛나는 삶을 살아 사회를 밝히는 것이 곧 효도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에게 빌며 도움을 받았지만, 무엇이 진정한 도움인지도 모른 채 물질을 얻으면 그것이 도움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좋은 조건이 주어졌으니 도움이지만, 그 안에 담긴 자신의 공부를 함께 알았다면, 그것은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공부 없이 받은 물질은 사라지면 또 빌게 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쓸 줄 모르면 자연은 다시 그것을 거둬 갑니다. 노예에게 돈을 주면 놀고먹는 데 쓰지만, 사업가에게 주면 더 열심히 일합니다. 이 차이가 곧 가난과 부자의 차이이며, 자연이 노예에게 넉넉한 돈을 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돈은 바라지 않아도, 자신을 갖추면 갖춘 만큼 정확하게 들어오게 됩니다. 바르게 쓰는 경제는 누구도 흔들 수 없고, 흔든다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은 젊을 때 돈을 모아두는 것이 아닙니다. 평생 동안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었을 때도 질량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떤 일도 맡기기 어려워지며, 결국 사회로부터 소외됩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잘 갖추고, 어떤 것에도 매이지 말고, 스스로를 빛나게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자연에 합당한 삶이며, 영혼이 맑아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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