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연은 신과 신의 만남입니다: 갈등을 넘어 진정한 동반자로

 우리가 이 '맞신'을 풀어가는 방법 중에서 오늘 새로운 것을 한번 잡아보겠습니다. 무엇이 맞신이냐 하면, 가장 근본적인 맞신은 바로 사람과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만나든 신과 신으로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신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스승님은 또 희한한 말씀을 하신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신인데 인육(人肉)을 쓰고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신 중의 신, 즉 일신(一神)이고, 우리에게 와서 역할을 하는 다른 신들이 이신(二神)입니다. 그러면 이 신들은 왜 우리에게 인연으로 와 있을까요? 

 
어떤 신이든, 신들은 인간에게 덕을 보려고 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천신이라도 우리에게 와 있다면, 인간에게 덕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신들은 인간일 때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을 끝냈고, 지금은 에너지 상태이므로 인간과 연결해서 같이 작업을 하는 것이지, 스스로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연으로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또 아내의 집안과 남편의 집안이 있는데, 여기에 전부 신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수호신들이기도 하고, 그 집안을 관장하는 대신(大神)들이 우리 주위에 다 있게 마련입니다. 그 집안을 관장하는 대신, 그 집안의 혈통을 관장하는 신들이 또 첩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쪽 집안의 신들이 모두 너무 기운이 높고 세다면, 이때가 바로 '맞신'입니다. 이 맞신들이 한쪽이 높거나 낮아서 차이가 나면 맞신이라 하지 않는데, 차이가 없이 똑같을 때, 이럴 때 맞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차이가 없이 똑같다면 서로 의논하면서 풀어 나가면 발동을 해도 화를 안 낼 텐데, 우리 쪽 집안의 힘도 크고 상대 쪽 집안의 힘도 커서 양쪽 집안이 모두 자기 자식을 귀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상대가 우리 딸을 멋대로 아래로 보고 말을 안 듣는다' 하면서 화를 자주 내면 문제가 됩니다. 그동안 우리가 살아온 역사적인 관습 때문에 여성의 집안은 먼저 낮추며 살아야 한다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인식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여성 집안에서 조금 참아줍니다. 그렇게 참아주니 여성 자신도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도를 딱 넘어서면, 여성 또한 대신(大神)이라서 화가 나 발끈하면 그 뒤에 있던 신장(神將)들도 참고 있다가 같이 발끈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화가 나도 통제가 되지만, 신들은 한번 발끈하면 통제가 안 됩니다. 사고까지 치게 되고 사단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엄청난 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서게 됩니다. 나중에 감정이 가라앉고 인간으로서 생각해보면, '싸울 일도 아니었고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됐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기운 센 사람들이 늘 겪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공부가 안 되어서 통제를 못 하고, 이 원리가 무엇인지 몰라 바르게 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맞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서로 양가 집안의 신들이 너무 큰 집안이고, 또 우리들 뒤에서 옹호하는 신장들이 너무 큰 신장들인 것입니다. 이 신장들이 서로 의논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데, 누가 위를 점하려고 들면 상대는 참기 어렵습니다. 신들은 모두 높은 것을 좋아하고 낮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운이 비슷할 때는 같이 의논하면 좋은데, 한쪽이 올라서려 하면 상대도 머리를 딱 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통제는 어떻게 되는가 하면, 바로 우리 인간들이 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은 통제가 안 되지만, 우리 제자들, 즉 인간들이 통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통제가 안 되면 신들은 그냥 같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납니다. 인간이 발끈하며 욱하는 것은 신이 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하는 게 아닙니다. 신들이 붙어서 욱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고가 납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이 사회에 사고가 많이 일어날 때입니다. 
 
사람이 참기 힘들어 화를 많이 내면 신들이 합세해서 일을 일으키는데, 그것을 '맞신'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니, 지금 우리는 서로 부부를 만나는 것인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인지, 동반자를 만나는 것인지, 그 초점을 잡아야 할 때입니다. 부부를 만난다는 것은 과거로 말하면 사대부 집안끼리 하는 것이고 지금으로 치면 중산층 이상 되는 집안입니다. 이런 집안에서는 부부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중산층 이상이 되면 그 집안의 남자 역시 이 사회에서 어떤 큰일을 담당해야 할 사람입니다. 큰일을 담당해야 할 사람은 내조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그러한 집안과 결혼할 때, 이럴 때는 부부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내조할 급이 아니고 그저 살아가는데 서로 힘이 되게끔 산다면, 이것은 내조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고 이럴 때는 동반자를 만나서 사는 것이 됩니다. 
 
지금은 전부 다 결혼하면 '부부'라는 이름을 쓰는데, 과거에는 결혼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짝지어 줬다고 했습니다. 짝지어 주는 것은 부부가 만나는 형식이 아닙니다. 부부는 수준(레벨)이 맞아야 합니다. 수준이 맞는다는 것은, 무언가 큰일을 할 사람과 그 옆에서 내조를 같이 해서 힘이 돼 줄 사람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조금 더 살펴보면, 과거에 일반인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일반 백성은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이고 사대부나 관료들, 즉 위에 있는 분들의 집안이 제사를 모셨습니다. 
 
조상님들과 신들도 그 사람들이 접한 것이지, 일반인은 신들을 함부로 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신을 대할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식층과 사회 지도급들은 신도 대할 줄 압니다. 그래서 제사를 모시는 동네 어른 집안이라면, 이 동네의 모든 조상들을 다 모아서 한번 제사를 올려 축원도 해주면 각자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런 것을 안 해주고 윗사람들이 자기 집안 제사만 자꾸 모시니 백성들도 제사를 한번 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과거에는 아랫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형편이 안 됐는데, 살기가 조금 좋아지니까 너도나도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네 어른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준비를 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가서 전부 거들었고 제삿날은 먹을 것이 풍부한 날이 되어 동네 잔치가 됐었습니다. 그때 제사를 지내는 김에 마을 모든 백성의 조상들도 다 불러서 축원 한마디 해주었다면, 그 집안에서 우리 마을 제사가 다 해결되었을 텐데, 이런 것은 안 하고 우리 조상만 챙기고 이름도 그렇게만 써넣다 보니 전부 다 등 돌리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너도나도 제사를 지내다 보니 낭비가 엄청나게 심해진 것입니다. 남들 하는 것을 안 할 수도 없고 물가는 자꾸 비싸지니, 어려운 사람들은 그 제사상 차리려면 허리가 휘청거립니다. 영혼들은 인간이 다스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 제사를 지내주다 내년에 안 지내주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렇듯이 신들은 사람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존재입니다. 신을 우리가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맞신' 싸움으로 늘 싸우고 울고불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들을 잘못 다스려서 우리 인생에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맞신' 싸움은 우리가 질량이 높아지면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갖춤의 질량이 높아지면 신들이 앞장서서 욱하며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자기 스스로를 제어(컨트롤)해야만 신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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