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본질과 내면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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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고달프게 살고 나면, 영혼 또한 고달프고 탁한 기운을 머금은 ‘잡귀’가 됩니다. 그런 잡귀는 전생에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이 환생하여 인간 세상에 오게 되면, 그를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힘이 없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 귀신의 영향을 받거나 시달리는 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우리는 이생이든 전생이든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잘못 알고 좋은 뜻으로 행한 일이 오히려 이번 생에 잡귀를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심은 씨앗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와서 어떤 행위를 했든, 그것은 결국 이 세상에서 겪고 처리해가야 할 과정일 뿐이며,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온 이상, 죄를 짓는다는 개념 자체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한 행동이 자신에게 되돌아와서, 그 환경 속에서 다시 공부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가 될 뿐입니다.
우리에게 '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원죄’입니다. 이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온, 원소들이 탁한 기운으로 남아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 원죄를 맑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수많은 일을 겪으며, 스스로를 정화하는 여정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근본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잘못 배운 것을 끝까지 고집하며 자신의 옳음을 주장한다면, 경험은 해볼 수 있어도 결국 참된 공부가 되지 않아 이번 생을 허비하고 그냥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이 생을 받아온 이유는 스스로를 맑히고,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 자체로 공부의 장이 됩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배워가는 자세가 진정한 공부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깨우치고 맑아지기 전까지는 윤회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환경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일생을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면, 육신을 떠날 때 영혼이 맑아져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범죄’ 개념을 들으며, “이 땅에 와서 죄를 짓는 법은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 분들도 있지만, 자범죄는 그들 신학적 체계에서 정의된 개념일 뿐입니다. 우리 삶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면, 그 대가를 이번 생 또는 다음 생에서 반드시 겪으며 갚아야 합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명확히 대가를 치르는 구조가 있는데, 별도로 ‘죄’라는 개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누군가를 속이려는 의도로 사기를 쳤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도 믿고 행한 것이라면, 그건 사기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인식 속에서 서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 활동이 사기죄로 처벌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죄’는 사실 대부분 ‘잘못’에 해당합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원죄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으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결국 자신의 논리이거나 어떤 집단의 논리일 뿐입니다.
진정한 옳음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고 우주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맑혀가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공부를 묵묵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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