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발전과 눈치 보기
사람은 어디에 있든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눈치를 보지 말라고 해서 그 말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가 눈치를 보는 이유는, 상대에게 받은 질량에 비해 자신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했거나 아직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탁한 에너지 역시 모인 만큼의 질량이 존재하며, 그것을 덮을 만한 질량의 행동을 하지 않고 가면 결국 그 자리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돈도 에너지이고, 실력, 성실함, 지식도 모두 질량을 가진 에너지입니다. 자신의 몫을 다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게 됩니다.
우주의 이치는 아주 엄격합니다. 은하계부터 시작하여 이 지상의 운용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습니다. 자연의 과학과 인간 사회의 이치를 함께 풀어보면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자신의 질량이 아직 작은 상태에서 큰 곳에 들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수많은 은하계 중 하나인 우리가 속한 은하 안에도 수많은 태양계가 있으며, 그 안에는 블랙홀도 존재합니다. 우리의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으로부터 ‘3:7의 법칙’ 중 7에 해당하는 지점, 즉 보호받는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연에는 ‘보호의 장소’와 ‘운행의 장소’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우주의 구조처럼 자신의 질량을 알고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부족할 때는 기꺼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괜히 힘겨운 밀고 당기기를 하다 보면 결국 시간만 낭비하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질량으로 공존해 줄 때는 함께할 수 있지만, 그 질량의 균형이 무너지면 언젠가는 관계에서 튕겨 나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질량이 커지고, 자기 에너지의 밀도를 형성하면서 정리되는 시기가 오면 결국은 터져 나가게 됩니다. 이때 균형에 맞지 않는 것은 그 영역 밖으로 튕겨져 나가고, 안에서 밀도에 맞는 것들끼리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초신성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을 알고, 자신의 질량이 작을 때는 질량이 큰 곳에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의 질량이 채워지고 나면, 공존하며 서로 돕는 에너지를 주고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바깥세상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자신을 갖추려는 노력을 한 만큼 힘을 가지게 되며, 그만큼의 질량을 얻게 됩니다. 자연의 법칙은 오차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이치를 깨달았다면 섭섭해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질량이 부족하거나 몫을 다하지 못하면, 눈치를 보다가 도태되거나 더 강한 쪽에 흡수되어 버리게 됩니다.
자신이 힘들 때는 아닌 척하거나 감추기보다,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질량이 낮을 때는 겉으로 보이는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닦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운동이 됩니다. 이 방식이 오히려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세상이 불공평해 보일 수 있지만,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정합니다. 힘은 항상 아래로 써야 하며, 자신이 위에서 힘을 받았더라도 그 힘을 위로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무식하면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눈치를 안 본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질량을 모르는 상태에서 생기는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을 알고, 진심으로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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