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와 인연의 중요성

 공부는 초점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순을 잡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이 초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연을 만나는 것은 우리가 먼저 도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도움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부족함을, 그 인연을 통해 일깨우고 알아차릴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커피와 빵을 건네거나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진정한 도움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워진 이후에,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부족한 습관과 성질을 상대에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상대를 통해 도움을 받는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상대가 왜 고마운 존재인지, 그 이유와 원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종종 ‘내가 잘해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상대가 더 잘해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곤 합니다. 
 



상대가 화를 낼 때, 그에 맞서 화를 내기 전에
“무엇이 그 사람을 아프게 했는가?”,
“무엇이 불편했기에 나에게 화를 낼 만큼 되었는가?”를 헤아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며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진정한 관계의 발전이 시작됩니다. 
 
상대의 부족한 점은 외면하고 내게 유익한 면만 받아들이려 한다면, 우리는 성장을 이룰 수도 없고, 진정으로 상대를 아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할 때 마장(魔障)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마장이 없다면, 진짜 공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장이란, 나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는 인연이며, 우리는 이것을 껴안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 마장을 풀어가면서 나 자신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충분히 성숙하고 나면, 그때 비로소 자신이 행한 것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진정한 도움이 됩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수많은 인연들에게 직접적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한 역할을 통해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보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식이나 배우자에게조차 직접적으로 보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회 속에서 바르게 살아가고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써, 그들도 자신의 노력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른 방향입니다.
상대가 노력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끌어올려 돕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노력하게 돕는 것이 진짜 도움이며, 노력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 유익한 일을 했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 그로부터 공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공치사(功致辭)를 받으면, 그 순간 그것은 샘샘이 되어 더 이상 ‘도움’이 아닌 것이 됩니다. 
 
우리가 왜 사회와 공익을 위해 살아야 하느냐면, 특정인을 위해서가 아닌 모두를 위한 행위는 공치사를 받지 않으며, 노력하는 사람은 그 속에서 내가 낸 에너지를 바르게 되돌려받게 되고, 그것이 결국 사회를 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도움’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개인에게 한 선의 행동은 진정한 도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공치사를 바라며 행한 것으로, 조금만 섭섭한 일이 생겨도
“내가 너에게 어떻게 해줬는데!”라는 감정이 올라오게 됩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나를 괴롭히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상대에게 잘해줄수록, 그 사람의 부족한 성격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만든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며, 내가 베푼 선행은 그 순간 상대의 것이 된 것이니, 다시 돌려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인연을 바르게 대하는 법을 익히고, 냉철하고 바르게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내가 만든 환경이 나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그걸 모르고 제대로 쓰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연은 정확한 방법으로 주어진 것이며, 그것을 바르게 쓰지 못하면 삶은 얽히고 고통스러워집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기본적인 인연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 인연들을 어떻게 소화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 법칙을 공부해야, 우리의 삶은 황금처럼 빛나는 보석이 됩니다. 
 
하지만 공부가 부족하면, 자신에게 이익을 줄 사람만 기다리며 득실도 모르는 아이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노력 없이 사랑을 받을 수 없고, "당신은 나를 사랑해?"라고 묻고 있다면, 이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의 깊이를 모르면, 결국 말로만 사랑을 주고받게 됩니다.
진짜 사랑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노력에서 피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바르게 살아야 50대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랑과 미움은, 내가 어떤 행함을 했느냐에 따라 받게 되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원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도움을 받기 위해 인연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상대가 짜증을 낼 때, 그 감정을 흡수해서 내 공부로 삼고, 대화를 통해 풀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마음을 나누다 보면,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내일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삶을 바르게 살고자 한다면, 먼저 가족과 함께 공부하십시오.
이 배움을 바탕으로 지인들과 만나야 인연이 꼬이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도움을 받아 인생을 빛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족은 이처럼 우리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기초입니다. 
 
이런 공부 없이 세상에 나가 멋지게 펼치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이 밥 먹을 자격이 되지 않는다면, 밥을 빼앗는 사람이 오히려 은인입니다.
나태함을 계속 이어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도움이 아닙니다. 
 
냉철한 분별을 할 수 있어야, 미래의 환경을 제대로 만들 수 있고, 빛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함은 특정 대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해야 비로소 보람이 생깁니다.
이타행을 하며 “상대를 도왔다”고 여긴다면, 아직 낮은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사회를 이롭게 하는 삶이 공인(公人)의 길이며, 이타행은 공인이 되기 위한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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